■ 라이프점프 ‘커튼콜’은…
유명 작가 스티븐 킹은 부고 기사를 쇼가 끝난 뒤 배우들이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서 인사하는 '커튼콜'에 비유했습니다. 부고 기사는 '죽음'이 계기가 되지만 '삶'을 조명하는 글입니다. 라이프점프의 '커튼콜'은 우리 곁을 떠나간 사람들을 추억하고, 그들이 남긴 발자취를 되밟아보는 코너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축구선수 유상철을 영웅으로 만든 2002년 월드컵의 유명한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처럼 병을 이겨낸다던 그의 꿈이 이뤄지길 바랐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2년 전인 2019년 11월 유상철 전 유나이티드 감독은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은 것을 밝히며, “암에 지지 않고 보란 듯이 완치해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그런 그를 많은 팬이 응원했으나, 지난 7일 유상철 전 감독은 투병 끝에 우리 곁을 떠났다. 향년 50세, 그를 떠나보내기엔 우리 곁에 머문 기간이 너무 짧아 그의 죽음이 더 안타깝게 여겨지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소식에 애도의 물결도 이어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함께 ‘4강 신화’를 이뤄낸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과 이천수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 황선홍 전 대전하나시티즌 감독,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이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진 빈소를 찾았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 퀴라소 감독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유 전 감독을 애도하는 글을 올렸다. 사람들은 그를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멀티플레이어로, 여리고 따뜻한 사람으로, 축구 인생의 첫 스승으로 기억했다.
멀티플레이어로 2002년 월드컵 16강 전에서 큰 활약
유상철 전 감독은 서울 은평구 응암초등학교에서 처음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경신중학교와 경신고등학교를 거쳐 건국대학교를 졸업해 1994년 현대 호랑이에 입단했다. 그의 프로 축구 인생의 시작이었다. 그해 A매치에도 데뷔한 유 전 감독은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1998년에는 23경기에 출전해 15골을 넣으며 득점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해 유 전 감독은 득점왕을 수상하고 미드필더로 베스트 11에 들어갔다. 1999년에는 J리그로 자리를 옮겨 활동했다.
키 183cm의 탄탄한 체구에서 나오는 뛰어난 체력 덕분일까. 그는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A매치 경기에서 소화한 선수로 유명하다. 스트라이커,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등 소화가 불가능한 포지션이 없는 선수였다. K리그에서는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부문에서 모두 베스트 11에 선정된 2명의 선수 중 한 명이 유 전 감독이다. 그를 사람들이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멀티플레이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 전 감독의 멀티플레이어로서의 활약은 우리나라 축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2002년 월드컵에서 두드러졌다. 그는 교체 선수에 따라 포지션이 달라져, 당시 수령탑이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의 전술에 큰 도움이 됐다. 특히 큰 활약을 펼쳤던 것은 16강 이탈리아전에서다. 당시 우리나라는 1:0으로 이탈리아에 뒤지고 있던 상황. 히딩크 감독은 후반전에 수비수 3명을 빼고 황선홍, 이천수, 차두리 3명의 공격수 투입했다. 공격수 5명을 필드에 두는 전술을 쓸 수 있었던 데는 유상철과 박지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상철은 선발 때는 미드필더로 뛰다가 선수 교체가 이뤄지면 백3의 좌측 스토퍼로, 홍명보가 빠지면 다시 중앙 수비수로 들어가 안정적인 수비수를 보였다. 결국 이날 유상철 전 감독의 활약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이탈리아에 2대1 역전승을 거둔다. 2004년엔 아테네 올림픽에 와일드카드로 출전해 8강 진출을 돕기도 했다. 2005년까지 대표팀을 뛴 그는 성인 국가대표로만 총 124경기에 출전하는 기록을 세웠다.
축구 선수로 다양한 기록을 세운 그는 은퇴 후 왼쪽 눈이 거의 실명된 상태로 선수 생활을 했음을 밝기도 했다. 그만큼 유 전 감독은 선수 생활을 하는 데 있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다.
유 전 감독은 은퇴 후 3년 뒤인 2009년 춘천기계공고에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해 2011년에는 대전시티즌(현 대전하나시티즌)을 맡으면서 프로 감독으로 데뷔한다. 2014년부터는 울산대학교 감독으로 경험을 쌓은 뒤 2018년 전남 드래곤즈로 프로 무대에 복귀했으나 8개월 만에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리고 2019년 몸담은 인천 유나이티드가 마지막 지도자 생활이 됐다.
유 전 감독은 2019년 10월 황달 증세로 입원했다가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았던 것. 당시 그는 팬들과 병마와의 싸움에서 이겨내고 돌아오겠다고 했으나 끝내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떠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꿈이 이뤄진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꿈을 이루려고 애썼던 유 전 감독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정혜선 기자 doer0125@lifejum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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