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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농시대를 열자 1부-농업의 공익적 가치] '농업 사라진 미래' 가상 스케치 - 농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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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K농시대를 열자 1부-농업의 공익적 가치] ‘농업 사라진 미래’ 가상 스케치

다시 곡식이 심어질 날을 기다리며…

농업 관련 정부부처 없고 농사짓는 사람 사라지고 쌀·채소 수입해 먹는 시대

할아버지 땅 나눠 갖기 위해 제삿날 시골에 모인 손자들

식량 안보·농지의 역할 등 농업에 관해 얘기하는데…
 

농업이란 산업은 존재 자체만으로 다양한 공익에 기여한다. 환경·경관 보전, 전통문화 계승, 지역사회 유지는 녹색산업인 농업이 있고 그 농업을 영위하는 농부들이 있는 이상 자연스레 따라붙는 혜택인 것이다. 농업의 결과물인 곡물은 국가안보의 중요한 수단으로도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러한 공익적인 가치와 다원적 기능에도 불구하고 농업은 오늘날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는 것이 현실이다. 농업이 사라진 우리 사회를 이순원 소설가가 가상으로 그려봤다. 결론은 가상 스케치 속 미래세대는 다시 농업을 꿈꾸기 시작했다.
 

오늘은 할아버지의 제삿날이다. 할아버지는 다섯 자식을 낳았는데, 그 아래 여덟 손자가 시골 고향집에 모였다. 고향집이라고 했지만 할아버지가 낳은 다섯 자식의 고향이지 손자들의 고향은 아니다. 할아버지의 제사에 손자들이 다 모인 것은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각별하거나 효성이 지극해서가 아니다. 오늘 제사를 끝으로 그동안 아버지 형제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던 할아버지의 시골 터전을 손자들이 나눠 갖기 위해서다.

제사상 앞줄 왼쪽에서부터 차례로 놓인 대추와 밤과 배와 감도 모두 해외에서 수입한 과일이다. 이제 이 나라는 과일뿐만 아니라 어떤 농사도 짓지 않는다. 더러 마당가에 고추나 상추 몇포기, 관상수처럼 자두나무나 모과나무를 심기는 해도 돈을 벌기 위해 직업적으로 논농사·밭농사를 짓는 사람은 없고 과수원을 하는 집도 없다. 이유는 간단한다. 쌀과 같은 주식은 물론 채소와 과일도 모두 수입해 먹는 것이 싸기 때문이다.

20년 전만 해도 이 나라엔 ‘농림축산식품부’라는 정부부처가 있었다. 국민총생산으로 따질 때 2%가 채 되지 않았지만, 농업이 국민 건강과 먹거리의 기본을 지키던 시절이었다.

오늘 손자들로부터 마지막 제사상을 받고 있는 할아버지는 태어나서 돌아가실 때까지 농사를 지었다. 그걸로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쳤다. 농업이 국가산업으로 대접받던 시절의 일이었다.

언제부턴가 온 나라가 현실적인 ‘이익’과 ‘효율’을 앞세우며 큰 틀에서 농업을 바라보는 나라 정책을 부담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쌀 한포대를 생산하는 데 드는 농토의 넓이와 노동의 비용을 따지고 거기서 얻는 이익을 수치로 계산해 그것이 휴대전화 한개를 더 생산하고 수출했을 때 얻는 이익과 비교했다. 국가가 여러 농산물의 수입 관리만 잘한다면 농사는 차라리 짓지 않는 것이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국민총생산의 2%도 되지 않는 농업과 농업종사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느라 국제사회로부터 보호무역주의 국가로 공격받는 일도 피할 수 있었다. 값비싼 전자제품 열개를 팔 기회가 마늘 몇쪽 때문에 막혀서야 되겠냐는 논리였다.

누군가 ‘식량의 안보화’를 주장했지만 그것 역시 제1차 세계대전이 있었던 20세기 초반 영국에서 아주 예외적으로 특별하게 발생한 일이었을 뿐, 그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지금에 그것은 현실로도 이론으로도 맞지 않다는 ‘식량의 세계화’ ‘식탁의 공동화’ 주장이 펼쳐졌다.

농사를 짓지 마라. 지어봐야 얼마를 버냐? 짓지 않아도 지을 때의 이익 정도는 국가에서 다른 산업을 부흥시켜 보상할 것이다. 그러자 나라 안팎으로 찬밥처럼 여기는 농업에 종사하던 농민들도 하나둘 손에서 쟁기를 놓으며 묵은 논과 밭이 늘어났고, 해외에서 그때그때 항공편으로 들어오는 축산물과 채소들이 도시는 물론 시골집 밥상에까지 오르며 우리는 정말 그렇게 선진국이 돼가는 줄 알았다.

그렇게 농업에서 완전하게 손을 놓은 지 20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이제 다시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제사에 모인 손자들의 생각도 그랬다.

“식량 안보와 식품의 안전은 정말 중요한 건데 너무 쉽게 손을 놓았어. 지난번 A국에서 곡물값과 축산물값을 한꺼번에 10% 올리며 ‘만약 저항하는 국가가 있으면 그나마 수출하지 않겠다’고 협박하듯 말했잖아.”

“예전엔 비가 오면 댐 역할을 하던 논들이 지금은 모두 평지와 경사지가 돼 비만 오면 그게 바로 강으로 모여서 작은 비에도 하류 쪽 도시들이 물난리를 겪잖아. 농사를 짓고 안 짓고를 떠나 국토 자체가 황폐해졌어. 지금 이 동네 역시 들판이 폐허로 변했잖아.”

“우리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 정서적으로 마음의 고향을 잃었다는 거야. 우리 어릴 때 할아버지댁에 올 때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냥 고향에 오는 게 아니었어. 농사를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온 국민의 이상향이 바로 농촌이었는데. 우리야말로 이상향을 보존하듯 이곳 할아버지의 터전을 저마다의 것으로 나누지 말고 좀더 오래 공동으로 지켜가는 것은 어떨까? 다시 여기에 우리 어린 날처럼 곡식이 심어질 때까지.”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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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3, 2020 at 10: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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